그냥 생활하면서 느꼈던 점을 일기처럼 적어봤습니다. 편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사, 30대 남자, 유부남, 애 있음, isfj)
# '처음'이라는 감정
나에게 2월과 3월은 날씨만큼이나 추운 싫은 날들의 연속이다.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2월은 3월의 개학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고, 3월은 개학 후 새로운 학생들과의 어색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말 싫은 날들이다. 그중 오늘은 2월에 느낀 '처음'이라는 감정에 대해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 처음에 처음이 더해진 특별한 졸업식
학교 생활을 하면 2월의 가장 큰 행사는 졸업식이다. 올해 처음 고3 담임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졸업하는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졸업식이 다가올수록 긴장됐고 특히나 당일 출근하는 날에는 뭔가 모를 먹먹함까지 있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일단 내가 겉보기와는 다르게 감정적인 면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좀 험상궂게 생긴 외모(?)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쉽게 쉽게 결정하고 타인의 눈치를 잘 안 보는 선생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난 어떤 행동이나 결정을 함에 있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눈치를 보고 결정을 하는 타입으로, 남몰래 마음을 많이 졸인다. 학생들을 대할 때도 엄하게 해야 할 때는 엄하게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이처럼 생각보다(?) 나는 감정의 동요가 조금 있는 편이다.
그리고 아마 이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되는데, 이번에 졸업하는 학생들과는 특별한 관계다. 나는 올해 '처음'으로 고3 담임을 맡게 되어, 이번 학생들이 나의 첫 졸업 제자이다. 심지어 이 학생들은 나와 1,2,3학년을 모두 함께한 학생들이다. 어쩌다 보니 내가 3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쭉 올라가며 담임을 했는데, 우리 학교에서도 이런 경험을 해본 교사는 거의 없을 정도로 나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처음'인 경험이다 심지어 우리 반에는 3년 내내 내가 담임인 학생도 있다.(좋았을까 싫었을까) 그리고 이 학생들이 1학년이었을 때는 또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담임이라는 것을 해봐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기억에 많이 남았던 학생들이다.
# 진짜 내 모습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졸업식 아침부터 뭔가 모르게 먹먹하고 긴장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긴장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바쁘게 시간이 흘러 어찌어찌 졸업식이 금방 다 끝났다. 끝난 후 선배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어떤 한 선생님이 그러셨다. '처음에는 눈물도 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 물론 졸업식 행사가 귀찮다기보다는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는 것에 포인트가 있는 말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눈물도 나고 그랬는데'라는 말이 뭔지 모르게 마음이 쓰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은 나도 졸업식을 앞두고 먹먹했던 게 아니라, 진짜 속마음은 눈물 날 정도로 슬펐던 건 아닐까 싶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졸업식이 다가올수록 내 졸업식이 아닌데도 긴장되었던 것을 보면, 사실은 먹먹했다기보다는 학생들을 보내는 게 너무나도 아쉽고 슬펐던 것 같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려다 보니 '먹먹하다'라는 솔직하지 않았던 내 감정으로 표현된 것 같다.
# '처음'이 주는 특별함
왜 그렇게 아쉽고 슬펐을까. 그리고 왜 감정을 절제하려고 했을까.
아무래도 '처음'이 주는 특별한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진 처음은 특별하다. 첫 취직, 첫 결혼, 첫 육아. 그리고 그 '특별하다'의 의미는 '서툴렀지만 기억에 남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경험부터 수월하게 잘 해낸 적이 없다. 처음이라 긴장되고, 처음이라 고민이 많고, 처음이라 슬프고, 처음이라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나 첫 경험이 지나고, 두 번 세 번 지나면 그 경험도 어느새 익숙해지면서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들도 편해지고 무뎌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험의 익숙함을 얻게 되지만 강렬한 감정들은 잊혀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첫 경험에서 느꼈던 감정들은 강렬하고 특별한 의미를 준다.
하지만 언제 선가부터 나는 처음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의연해지려고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위나 직업을 얻어감에 따라 처음 하게 되는 경험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늘 해본 일인 듯 한 '척'을 하려는 것 같았다. 이번 졸업식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애써 감추려 하다 보니(=학생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다 보니), 그 순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아쉬움과 학생들에게 나의 진실된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든다. (불과 당일 저녁밖에 안 됐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해줄걸, 한 번이라도 더 악수해 주고 안아줄걸 이라는 아쉬운 마음들이 든다.)
# 첫 경험을 받아들이는 앞으로의 자세
이러한 아쉬움이 들다 보니, 앞으로도 인생에 있어서 첫 경험에서 느낄 감정들을 숨기거나 외면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여러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자의든 타의든 첫 경험을 해야 할 순간들은 많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체통 지키며 감정을 덜어내기보다는 그 순간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느낀 대로 진실되게 표현하고 행동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반복되는 경험이라면 감정을 덜어내려 하지 않더라도 두 번 세 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정이 덜어내지고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뭐든 처음에는 강렬한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표현해 볼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 앞으로 인생에 있어서 대부분의 경험이 처음일 어린 아들이 보여주는 반응에 대해 더 확실하게 함께 공감해 주고 느껴줘야겠다. 그래야지 새로운 경험이 주는 감정을 더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을까...?